미안한 르몽드 광합성

한 3주 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이러저러한 사연들을 보기가 괴로워서 안들어갔었는데 오랜만에 들어간 나는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네. 휙휙 소식들을 스쳐 지나 내려가다가 불어 공부겸 좋아요를 눌렀던 르몽드의 게시글이 날 사로잡았다. 밤 사이 르몽드 사이트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désolé(미안)라는 제목의 영상을 링크해놓았는데 섬네일이 어째 한국 아이돌 같단 말이지.

그래서 클릭해 보았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였다. Oh la la!


작년 가을 교환학생을 갔을때, 나는 작디 작은 우리 과 안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만 18세 프랑스 소녀를 발견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 엘리야? 엘쟈? 엘리쟈? 미안하다 얘야 언니가 너의 이름을 까먹었구나. 학생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나도 보지 않은 한국 드라마를 줄줄 읊어대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했었다. 자기는 동생이랑 같이 집에서 한국 가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열광한다고 했다. 특이한건 아이돌도 좋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엄기준이었다는 사실. 드림하이에 선생님으로 나왔다고 하고, Scent of Woman(그러니까 여인의 향기!)에 의사로 나오는데 이름을 모르겠다는 거다. 난 드라마를 잘 안보니까 기숙사 돌아가서 검색해보고 그게 엄기준이라는걸 깨닫고 놀랐었다. 와, 서양애가 엄기준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구나. 후에 타지생활의 무료함과 적적함에 나도 그녀가 알려준대로 유투브에서 갓 종영한 여인의 향기를 보기 시작했고, 우리는 한동안 점심시간마다 쎈트 오브 우먼을 갖고 꺅꺅거렸었지.

그리고 또 하나 에피소드가 있는데, 파리 라데팡스의 꺄트르떵이라는 엄청나게 큰 쇼핑몰에서 날 포함한 한국 여자 셋이서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을때의 일이다. 쏠드 기간 일요일, 수많은 사람 속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멀어 화장실 어디야' 같은 식으로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어떤 양인 여성이 다가오더니 '한국 사람이에효?' 라고 묻는거다. 우리는 파리 한 가운데(라기엔 주변부지만 파리에서 거의 가장 큰 현대식 쇼핑센터니까 그렇다고 해두자)에서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양인 여성에게 당혹감을 느꼈고 잠시 어버버하다 그렇다고 답했더니 그녀는 친절하게도 화장실을 안내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넓고 사람많은 데서 설마 뭐 엿이라도 멕이겠어? 하며 그녀를 따라가는데, 그녀는 가면서 귀에 꽂고있던 이어폰을 건네며 자기가 한국 아이돌 노래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요즘 듣는 노래라며, 블락비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냐며 물어봤다. 그 땐 우리가 한국의 신!문화를 거의 끊고 살던 시기라 우린 블락비라는 가수는 처음 들어본다며, 설마 십 년 전 에스엠에서 나왔던 망한 그룹인 블랙비트는 아니겠지? 하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미간을 찌푸리면서까지 열심히 들었었다. 그러나 우린 그 어떤 감도 잡을 수 없었지. 영 몰라하는 눈치에 그녀는 실망한 기색을 조금 보였지만, 우리를 화장실로 인도해주고 미소를 띄운 채... 유유히 사라졌었다.

이런 일을 접하긴 했어도 외부에는 절대적으로 아이돌 문화가 바탕인 꺄뽑k-pop은 아직도 일부 마니아들의 하위문화로 여겨지는 걸로 아는데(싸이의 힘은 예외로 치고) 이건 르몽드 페북 담당자가 슈퍼주니어 덕후인게 분명하다. 불어인 '데졸레, 데졸레'가 제목도 아니고 '쏘리 쏘리'가 제목인데 사과문에 이 영상을 같이 올리다니. 아, 간만에 피식 터졌네. 내일쯤 울나라 대선 결과를 르몽드가 보도하겠지만 모르겠다. 계정 비활성화 하고 나왔다. 



덧글

  • 연콩아가씨 2012/12/20 18:16 #

    관리자가 덕후인게 분명합니다!! 저도 르몽드 가끔 들어가는데... 얼마전에 루이뷔똥 광고를 대문을 다 덮을정도로 걸어놨더군요. 아... 한때 프랑스 대표 진보언론이었는데 어쩌다가 ㅠㅠㅠㅠㅠㅠㅠㅠ
  • clair 2012/12/20 23:44 #

    저도 배우기는 그렇게 배웠는데 싸이트 들어가면 ㅎㅎㅎ 으응? 다 상관없나? 싶은 모습들을 많이 마주합니당. 으으 근데 제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르몽드 들어가면 까막눈이 되는 것 같은 심정 ㅠ.ㅠ 세상은 참 넓은것 같아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